상사화의 전설
[1]
옛날 한 마을에 금술이 좋은 부부였으나, 아이가 없어 부처님께 간절히 소망하여 늦게 딸을 얻었습니다.
어렵게 태어나 귀하게 자랐지만 아이는 부모님에 대한 효성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착한 심성과,
미모도 빼어나 온 마을에 자랑으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다 아버님이 이름 모를 병으로 돌아 가셔서 그 딸은 아버님의 극락왕생을 위해 인근의 절에서
백일 동안 탑돌이를 하였는데, 큰 스님을 시중드는 스님이 그 처녀를 유심히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 스님은 누가 볼까, 처녀에게 발각될까 불안해 하면서도 매일 남 모르게 그 처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그 처녀와 마주치는 날이면 가슴은 두근두근 얼굴을 분홍으로 물들였습니다.
그러나 감이 애절한 마음만 있을 뿐 불자로서 차마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덧 백일은 다가왔으니 불공을 마치고 처녀가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스님은 절 뒤 언덕에서 하염없이 그리워하다 그만 그날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해부터 그 스님의 무덤 옆에 이름 모를 풀이 돋아 났는데 언제나 잎이 먼저 나고,
잎이 말라 쓰러져야 꽃대가 올라와 연보라 꽃송이를 고개가 무겁게 피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풀을 세속의 여인을 사랑하였으나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결코 말 한 마디 못한 그 스님의 애절함을 닮아 잎과 꽃이 만날 수 없는 꽃으로 피어났다 하여
그 이름을 ‘상사화’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상사화
[2 ]
옛날 사람들이 모두 천국에 살았을 때 사이 좋은 누나와 동생은 바닷가에서 달을 보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누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동생은 누나를 일으키려다 어쩔 수 없이
누나를 꼭 끌어 안게 되었습니다.
둘은 그때부터 남매에게는 있어서는 안되는 이성 간으로 사랑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두 남매는 날마다 바닷가의 돌 위에서 점점 깊은 관계로 발전해 갔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하나님께서 이 두 남매를 누나는 꽃이 되고, 동생은 잎이 되는 ‘상사화’라는 꽃으로
환생 시켜 인간 세계에 내려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둘은 뛸 듯이 기뻤습니다.
비록 인간 세상이지만 같은 뿌리의 잎과 꽃이 되니 서로 같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나와 동생은 한 뿌리가 되었지만 둘은 절대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항상 누나가 필 때는 동생은 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둘은 아무리 기다려도 절대로 만날 수 없습니다.
먼저 잎이 나와서 다 시든 다음에야 꽃대가 올라와 꽃이 피어나니 평생 만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상사화
[3]
옛날 중국 어느 마을에 약초를 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딸만 있었습니다.
조선에 불로초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약초를 캐기 위해 조선에 당도하여 전국을 헤매다 결국 죽게 되었는데
딸에게 후대에서라도 불로초를 꼭 구해야 한다는 유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듣고 불로초를 찾아나선 처녀는 어느 암자에서 고승을 만나
육신을 버리고 도를 깨우치는 것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가르침을 깨닫고
암자에 머물며 수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큰 절에서 고승의 가르침을 받으러 찾아온 젊은 스님을 만나 첫 눈에 반하여
짝사랑을 하게 되었으나 결국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공부를 마친 젊은 스님은
다시 자신이 속해있던 큰 절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결국 처녀는 참지 못하고 큰 절에 찾아가 젊은 스님에게 사랑을 고백하였으나
“불자의 몸으로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의 유언도 이루지 못하고 사랑까지 거절 당한 충격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곳에서 잎이 없는 꽃이 피어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다음해 무더기로 자란 잎이 지고 나자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아름다운 처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가엽게 여겨 그 꽃을 ‘상사화’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상사화
[4]
송(宋) 나라의 폭군 강왕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영토를 확장하는 등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노라!'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위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날이면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수 많은 미녀들과 열락에 빠져 흥청망청 주색에 빠져 있었으며,
이것을 보다 못하여 바른말을 하는 충신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어느 날, 우연히 ‘한빙’이라는 신하의 아내 하(河)씨의 미모를 보고 그 미모에 사로잡혀
강제로 후궁(後宮)으로 삼으니
"폐하, 제 아내를 돌려 주옵소서!"
한빙이 피눈물로 읍소(泣訴)했건만
"스스로 네 아내가 선택했거늘 낸들 어찌하겠느냐?”
사랑하는 아내를 빼앗긴 한빙이 왕을 원망하자 왕은 죄를 뒤집어씌워 멀리 추방해 버리고,
이에 한빙은 한 줄의 시를 남기고 피를 토하며 자결하였다.
‘천 년이 가도 변치 않을 사랑을 가로막는 장벽(障壁)이 너무 높아
만날 길이 없으니 차라리 목숨을 끊어 영혼이라도 훨훨~’
오매불망 그리움에 울던 아내도 이 소식을 듣자 소맷자락에 유언을 남기고 성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임금은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만 나는 죽는 것이 행복입니다.
시체를 부디 남편과 함께 묻어 주십시오!"
그러나 왕은 죽어서도 못 만나게 합장(合葬)은 커녕 두 무덤을 멀찌감치 떨어지게 만들었는데
그러나 두 무덤 위에서 각각 한 그루의 나무가 쑥쑥 자라 아름드리 큰 나무가 되더니
마침내 두 나무의 뿌리가 뻗어 서로 뒤엉키고 가지들 마저 맞닿아 연리지(連理枝)를 만들었다.
그 후, 이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들이 애절한 연리지 나무를 상사수(相思樹)라고 불렀으며,
그 상사수 아래에 꽃과 잎이 따로따로 피어 나는 꽃을 상사화(相思花)로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