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
엉겅퀴 꽃의 전설
고려 때의 무신정권이 한참 기세 등등하던 시절,
나라 안에선 제 배 불리기에 급급한 귀족관료들의 착취와 권력투쟁으로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진 민초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고,
중국에선 몽고 제국의 강자 칭기즈칸이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잔인한 기마민족인 몽고 인들은 30여 년 동안 수십 차례나 고려를 침략해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다.
이때 몰락한 어느 문벌 가문에 ‘보라’라고 불리는 외동딸이 있었다.
이름만 큼이나 어여쁜 보라아가씨는 비록 몰락은 하였지만 자애로운 양친 밑에서 곱게 자랐다.
몽고의 침입으로 임금님은 강화도로 쫓겨간다 하고 여기저기 민란이 발생 하여 시국이 어지러웠지만 아직 철부지 보라아가씨는
댕기머리를 달랑 이며 산으로 들로 쏘다녔다.
보라 아기씨 보다 두 살이 많은 똘똘하고 총명한 또깡이라는 그 집 종이 항상 그녀 곁을 지키며 보살펴 주었다.
보라아가씨와 또깡이는 어릴 적부터 같이 커가면서 오누이처럼, 친구처럼 의지하며 지내오다가 둘의 마음은 어느덧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모의 정으로 까지 자리 잡게 되어버렸다.그러나 세상은 세월은 그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대몽과의 전쟁으로 또깡이는 돌아올 날 기약 못할 전 장터로 먼 길을 떠났고, 그 때부터 보라아가씨의 기다림은 시작되었다.
한 땀 한 땀 또깡이의 옷을 지으면서 햇살에 반짝이는 바늘로 그녀가 수놓는 건 그리움이었다.
한편 보라아가씨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 지방에 오게 된 흑조라는 다루가치가 꽃처럼 어여쁜 보라아가씨를 그냥 두려 하지 않았다.
다루가치란 원나라에서 직접 파견된 몽고인으로 고려의 중앙과 지방의 사무를 처리하는 감독자를 말한다.
또깡이를 위한 옷을 다 짓기도 전 결국 보라아가씨는 몽고로 끌려갈 공녀로 징발되고 말았다.
노쇠한 부모님 때문에 쉽게 도망갈 수도 없었던 그녀는 커져만 가는 또깡이에 대한 그리움에 수 많은 날들을 눈물로 밤을 새웠다.
왠지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을 안고 떠나는 길은 왜 그리 멀고 슬프기만 한 것일까?
심상치 않은 흑조의 눈초리도 모르는 체 그녀는 다른 처녀들과 섞여 먼 북쪽 나라로 한발한발 끌려가고 있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지치고 힘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그립고 그리운, 사무치게 그리운... 또깡이의 생각에 잠 못 들던
보라아가씨는 일행과 떨어져 숲 속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새들의 푸드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흑조가 불쑥 나무 뒤에서 나타 났다.
눈빛을 번득이며 다가오는 검은 물체. 그건 진정 인간의 눈이 아닌 먹이 감을 노리는 짐승의 그것 이었다.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놈은 순식간 달려들어 덮쳐 눌렀고 옷고름이 잡아 뜯겨져 나갈 때 그녀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버둥거리다가 댕기에 늘 꽂아 두었던 바늘을 빼내어 흑조의 정수리를 향해 찔렀다.
날카로운 바늘이 머리에 박히자 흑조는 갑자기 힘이 풀린 듯했다.
그 틈을 타서 보라아가씨는 옷을 추스르지 도 못한 채 도 망을 쳤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흑조는 화가 치밀 대로 치밀어 올라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쫓아오기 시작했고,
그의 손엔 기다란 채찍이 들려있었다.
험한 산길, 아무리 목숨을 걸었다 해도 처녀의 뜀박질이 몽고 기병의 추격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잡혔고...
채찍으로 매맞아 터진 살에서 가시가 하나씩 돋아났다.
그녀가 채찍에 맞아 죽은 자리에 남아있는 건 피투성이 시신이었으며 그 흥건한 핏물을 먹고 피어난 꽃이 바로 엉겅퀴라고 한다.
목숨으로 지킨 순결한 사랑은 지금도 언덕에서 먼 길을 내려다보며 혹 시 이제나 오실까..하고
피를 뒤집어쓴 모양으로 님을 기다리는 듯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