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
박꽃
옛날 어느 마을에 부지런하고 온순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의 아내 역시 살림 솜씨가 야무지고 착한 데다 뛰어난 아름다움을 지녀 농부는 마을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한낱 농사꾼의 아내가 천하 일색이라는 소문이 임금님 귀에까지 전해졌습니다.
예쁜 여자를 남달리 좋아하는 임금님은 농부의 아내를 탐내었습니다.
“소문대로 아름답다면 농사꾼의 아내로 지내게 하기에는 아깝지 않느냐?
과연 그렇게 미인인지 몸소 가서 보고 싶구나.”
임금님이 온다는 소문은 곧 마을에 전해졌습니다.
“이거 큰일이군. 어서 빨리 피하라고 알려줘야 해”
마을 사람들이 농부의 집에 찾아와 자신들의 일처럼 걱정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농부의 아내는 차분하게 대답했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있겠지요.”
엄마 지나지 않아 풍악 소리가 들리더니 사령들을 앞세운 임금님의 가마가 농부의 집 앞에 멈추었습니다.
이어서 풍채가 좋고 위엄이 넘치는 임금님이 두 궁녀의 부축을 받으며 가마에서 내려
일산(볕을 가리기 위한 큰 양산)아래에 섰습니다.
“이 집 여주인은 냉큼 나와 상감마마를 맞이하지 않고 무얼 하느냐?”
사령의 호령에 베를 짜던 여인이 임금님 앞에 나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네가 이 집의 안주인이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여인의 얼굴에는 10년 정도는 될 듯한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었고,
기름때가 자르르한 홑치마를 홀랑 걷어 올린 채였는데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습니다.
농부의 아내를 본 임금님은 기가 막혔습니다.
“네 남편은 어디 갔느냐?”
“뒷산 밭에 일하러 갔습니다.”
그대 농부의 아내의 입에서 나온 침 방울이 임금님의 얼굴에까지 튀었습니다.
“추하기 이를 데 없는 저런 여편네를 누가 절세 미인이라 했느냐?”
“아마 너무 못생겨서 비꼬느라 그런 헛소문이 났나 봅니다.”
임금님은 쓴 입맛을 다시며 궁궐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어느 마을 농부의 아내가 절세 미인이면서도
임금님을 보기 좋게 속여넘겼다는 소문이 나라안에 퍼졌습니다.
“뭐라고? 감히 임금님을 속이다니, 요망한 계집 같으니, 용서치 못할 일이로다.
당장 그 계집을 잡아드려라.”
육모 방망이를 든 사령들이 농부의 집으로 바람같이 몰려갔습니다.
“임금님을 속인 죄 죽어 마땅하다. 어서 오랏줄을 받아라.”
아내를 막아서는 농부에게 사령들은 육모 방망이를 내리쳤습니다.
남편이 쓰러지자 아내는 저고리 섶에 길쌈하던 바늘을 꽂고 일어서며 외쳤습니다.
“내 남편을 해친다면 나도 이 자리에서 자결하고 말겠소!”
농부의 아내를 산 채로 임금님 앞에 끌고 가지 못하면 자신들도 죽은 목숨이라는 걸 아는 사령들은
할 수 없이 농부를 놓아주고 아내를 궁궐로 끌고 갔습니다.
농부의 아내를 본 순간, 임금님의 노여움은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오! 과연 절세미인이로다. 얼른 몸단장을 하고 오너라.”
궁녀들이 농부의 아내를 씻기고 비단옷을 입힌 뒤 온갖 노리개로 치장을 하였습니다.
단장을 끝낸 농부의 아내는 주위를 환하게 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너의 아름다움은 듣던 것 이상이로다. 짐이 너를 귀하게 여겨 주겠노라”
“비천한 몸을 각별히 여겨 주시니, 하늘같은 은혜를 죽어서도 잊지 않겠나이다.”
뜻밖에도 농부의 아내는 방글방글 웃으며 임금님의 말에 다소곳이 따랐습니다.
임금님은 침실에 들어가자 마자 농부의 아내를 안으려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농부의 아내는 저고리 섶에 꽂아 두었던 바늘을 뽑아 임금님의 급소를 찔렸습니다.
“어이쿠 아얏!”
어의가 바늘을 빼려고 했지만 바늘은 부러져 깊숙하게 들어갔습니다.
임금님은 어의와 농부의 아내를 끌어다가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한편, 하루를 눈물로 지내던 농부는 아내를 구하러 궁궐로 갔지만 아내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농부는 차마 묻을 수 없어 움막에 뉘어 놓았습니다.
농부는 하루하루를 슬픔 속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미쳐갔습니다.
농부는 어느 날 어떤 노인에게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천약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내를 구하려고 천약을 구하러 떠났습니다.
그러나 10년20년이 지나도 농부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 날 집 지붕에 꽃이 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넋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고 해서 그 꽃을 ‘박꽃’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