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너구리 2019. 8. 24. 22:18


과꽃의 전설


먼 옛날 백두산의 깊은 산골짜기에 어린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추금이라는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집앞 뜰에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들을 가득 심어 놓았습니다.

그 꽃이 필 때마다 추금은 먼저 저 세상으로 가버린 남편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젖곤 하였지요.

 

어느 날 마을의 매파(중매쟁이)가 추금에게 재혼 할 것을 졸라대기 시작하였습니다.

끊임없는 매파의 설득을 받고 이 젊은 과부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뜰에 핀 하얀 꽃들이 하나 둘씩 갑자기 분홍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추금은 꽃을 살펴 보기 위해 꽃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꽃밭에는 죽은 남편이 나타나서 미소를 짓고 서 있는게 아니겠어요?

"부인! 내가 다시 돌아왔소!"

부인은 생각지도 못했던 기쁨에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따뜻한 품에 안겼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들과 함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모든 풀과 나무가 말라 죽어갔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저마다 살 길을 찾아 고향을 떠났습니다.

"여보! 넓은 만주땅으로 갑시다.

그곳은 가뭄이 들지 않았다고 하니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게요.

그곳으로 가서 농사를 지읍시다."

 

부인은 아끼고 보살폈던 꽃 중에서 흰색과 분홍색의 꽃을 한 그루씩 캐어 소중히 싸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들 부부가 만주땅으로 가서 정착한지도 어언 10년이 지났습니다.

고왔던 부인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고,

어린 아들도 이제는 어엿한 장정이 되어 곧 결혼도 시켜야 할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뒷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던 아들이 독사에게 물려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이들 부부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여보! 여기서 살면 죽은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할 테니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부인도 남편의 뜻에 따라 아들의 시신을 뜰의 꽃밭에 묻어주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옛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열심히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늙어 다시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를 수록 금실이 더더욱 좋아졌습니다

어느 날 부인는 남편을 돕기위해 나무를 하러 가는 남편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이들 부부가 산에 이르러 나무를 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절벽 위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 한 송이가 부인의 눈에 띄었습니다.

부인은 그 꽃을 몹시 갖고 싶어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를 위해 그 꽃을 꺽어 오려고 절벽을 기어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그만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

부인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엄마! 엄마!"

부인은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산속에 있어야 할 자신이 뜻밖에도 자신의 방안에 누워 있는게 아니겠습니까?

부인은 그제야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부인은 더욱 허전했습니다.

부인은 곧 뜰로 나가 꽃을 살펴보았습니다.

밤 사이에 하얀 꽃들은 분홍색으로 더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내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해 죽은 남편이 꿈에서나마 일생을 같이하며 죽었구나!"

 

부인은 그동안 매파로 인해 흔들렸던 자신을 반성하고는 마음을 더욱 굳게 하였습니다.

그 후 훌륭하게 성장한 아들은 무과 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때 문주 지방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추금 부인을 납치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부인은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매우 미모가 뛰어났기에

오랑캐 두목은 그녀를 아내로 삼으려고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인은 끝내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두목의 집이 그 옛날 부인이 꿈속에서 남편과 함께 살던 만주의 바로 그 집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두목은 완강히 거절하는 추금부인을 방에 가두어 놓고 매일 찾아와 아내가 되어 달라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추금 부인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거절 하였습니다.

 

이때 무과에 급제한 아들이 한양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오랑캐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을 안 아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어머니를 구출하기 위해 만주 땅으로 숨어 들어 갔습니다.

아들은 마침내 어머니가 갇혀 있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밤에 급습하여 무사히 어머니를 구출해 내었습니다.

이때 부인이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집은 너의 아버지께서 끝까지 나를 지켜 주신 집이다."

부인은 그 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아들에게 소상히 들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뜰로 나간 부인은 또 한번 깜짝 놀랐습니다.

지난 날 꿈속에서 죽은 아들을 묻었던 곳에 보랏빛의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꽃들을 캐어 품에 안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아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이 꽃을 과부를 지켜 주었다 하여 과꽃이라 부르며,

흰 과꽃은 모정, 분홍 과꽃은 달콤한 꿈, 보랏빛 과꽃은 사랑의 승리라는 꽃말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