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낭화
금낭화의 전설
옛날 설악산 아래 작은 마을에 ‘금화’라는 어여쁜 처녀가 살았습니다.
그녀를 한번 본 사람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미모였습니다.
금화의 부모 두 분은 태어날 때부터 말을 못하는 벙어리 였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어서 사이좋게 살면서도 자식이 없었는데 마흔이 넘어서야 딸 ‘금화’를 낳게 되었습니다.
무척 착한 성품이었던 벙어리 부부는 늦게 낳은 금화를 정성을 다해 키웠습니다.
금화의 부모는 힘없고 가난한 데다 말도 못하는 자기들에게서 경국지색의 미인이 태어났으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 했습니다.
금화 역시 어여쁜 자태만큼 이나 마음씨도 고왔습니다.
금화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 5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 금화는 부모님들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열심을 산나물을 뜯었습니다.
참취와 곰취를 뜯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넘나물을 찾아서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비탈진 언덕 위에 무더기로 나있는 넘나물을 발견한 금화는 너무 기뻐서 성급하게 넘나물에 손을 뻗던 중 발이 딛고 있던
돌무더기가 무너지면서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비탈이어서 미처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한참을 구르다가
큰 소나무에 걸려서 겨우 멈추기는 했으나 머리를 부딪치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난 후 금화가 정신을 차려보니 준수하게 생긴 웬 청년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금화는 부끄럽고 놀라서 얼른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온몸의 타박상으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청년은 싫다는 금화를 설득해서 자기 등에 업고 금화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사내에게 업혀 온 금화를 보고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는 부모님께 금화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정을 시켰습니다.
금화를 업고 온 청년은 행색은 초라했지만 행동거지가 예의 바르고, 잘 생긴 얼굴에 귀티가 흘렀습니다.
금화의 부모님들은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으나 물어보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아무 일이나 시키는 대로할 테니 이 집에서 잠시 머물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묻지 말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먼 친척이라고 얘기하고 밥만 먹여주고 헛간에서 머물도록 허락해 달라고
사정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처음에 완강하게 거절했으나 청년이 마당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사정을 하자 마지못해서 허락을 하면서
한 달 안에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의 이름은 서용이고 나이는 스무 살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용은 그날부터 헛간에 돗자리를 깔고 지내면서 집 안팎의 일을 부지런히 거들었습니다.
산에 가서 나무 하는 일이며, 물 긷는 일이며, 밭일까지 몸 사리지 않고 열심히 했지만, 그런 일을 생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일
금방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금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가르치는 대로 배워가면서 성의껏 일을 하고 끼니 때면 식구들과 같이 보리밥이나 옥수수,
감자 같은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늘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서용을 경계하던 부모님들도 갈수록 서용을 좋아하게 되었고, 금화와 서용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연정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서용이 머물면서부터 적적하던 집안에 생기가 돌게 되었고, 약속한 한 달이 다 되었지만 아무도
서용에게 떠나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서용 역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한 여름이 되자 서용과 금화는 물 맑은 계곡에서 벌거벗은 채 목욕을 하는 사이로 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되자 온 산에 타오르는 단풍을 보면서 사슴처럼 바위 사이를 뛰어다니는 서용은 이제 금화만큼 이나 산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렇게 꿈같은 세월이 흘러 서용이 금화의 집에 온지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금화는 나물을 뜯으러 다니고 서용은 열심히 밭을 일궈 식구들 양식으로 쓸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어느 날 금화가 취나물과 넘나물을 잔뜩 뜯어서 신이 나서 돌아와 보니 집안에 낯선 사람들이 와 있었습니다.
중년의 두 선비와 하인으로 보이는 총각 하나가 마당에 서있다가 밭에서 돌아오는 서용에게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금화와 금화의 부모들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놀랐습니다.
서용은 그들을 일으켜 자기가 묵고 있는 헛간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금화가 뒤에 남은 하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서용이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하인은 금화에게 바싹 다가서더니 목소리를 낮추어서 "상감마마의 아드님이신 서흥군이십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금화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왕자님이라니..., 서용이 왕자님이라니...
금화는 온몸이 떨려와서 자신의 가슴을 양팔로 감싸 안았습니다.
잠시 후에 서용은 선비들과 함께 헛간에서 나오더니 금화에게 다가와서..
"그동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오.
사실은 1년 전 그때에 나는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도피 중이었소.
당신과 아버님, 어머님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거요.
이제 아버님께서 나의 결백함을 아시고 나를 찾으신다니 돌아가야겠소.
오늘 궁으로 돌아가지만 곧 사람을 보내서 당신과 부모님을 한양으로 부르겠소.
당신은 나의 반려가 될 준비를 하고 계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은 나의 조강지처요. 나를 믿고 기다리시오. 부모님께도 그리 전해 주고..."
서용은 금화의 양손을 잡고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분홍색 염낭 하나를 꺼냈습니다.
"이건 내가 떠나올 때 어머님이신 영빈 마마가 준 염낭이요.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던 물건인데 당신에게 정표로 주겠소."
금화는 서용이 건네는 염낭을 받아든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서용은 방으로 들어가서 금화의 부모님에게 큰 절을 올린 다음,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선비들과 함께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금화는 부모님들께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부모님은 놀라면서도 안도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날부터 금화는 일각이 여삼추라 한양에서 자기를 데리고 간다는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 달이 다 지나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금화는 애가 타서 심장이 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서용이 떠난지 두 달째가 되던 날, 어머니가 금화더러 한양에 다녀오라며 여비를 주었습니다.
금화는 겁이 났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남장을 한 채 길을 떠났습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산골을 떠난 적이 없는 금화였지만 사랑하는 낭군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에 두려움을 이기고
우여곡절 끝에 한양에 도착했습니다.
금화가 한양에 도착해서 임금님이 사신다는 궁궐을 물어 물어 찾아가긴 했으나, 궐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문지기들에게 서흥군을 만나러 왔다고 해봤지만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창 끝으로 밀어내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금화가 사정사정하자 문지기 하나가 앞으로 나서더니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 따위가 그 어떤 날에도 서훙군 마마를 절대로 만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겠다마는 더구나 오늘은 마마의 혼례가 있는 날이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고 어서 썩 물러 가거라."
금화는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습니다.
금화는 그대로 한강물에 뛰어들어 생을 하직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고 뱃속에는 서용의 아기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금화는 서용이 준 염낭을 두 손에 꽉 쥐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금화는 부모님께 서용을 만났고 조금만 기다리면 상감마마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금화는 언젠가는 서용이 꼭 자기를 데리러 올 거라고 믿고 지금은 아기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산달이 가까워지자 부모님도 금화가 아기를 가진 걸 알고는 금화를 더욱 위해 주었습니다.
서용이 심어 둔 감자와 옥수수는 무럭무럭 자라고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었습니다.
겨울이 끝나가고 눈이 녹기 시작할 무렵, 금화는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금화는 한 손에는 서용이 준 염낭을 쥐고 한 손은 어머니에게 맡긴 채 아기를 낳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아기는 쉽게 나오지 않았고 금화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눈길을 뛰어가서 데려온 산파가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금화는 어렵게 사내아이를 낳아 놓고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금화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집안에는 엄마 잃은 아기의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화를 집 뒤의 양지바른 곳에 죽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던 염낭과 같이 묻어 주었습니다.
금화가 낳은 아기가 옹알이를 시작할 무렵, 한양에서 가마가 당도했습니다.
금화를 데려 가려고 온 상궁이 자초지종을 듣고는 혼자 돌아갔고, 서용이 직접 달려왔지만 금화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서용은 결코 금화를 잊은 것이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금화를 데려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사정사정했지만 왕실에서 정해주는 여자와 혼례를 올리고,
그 정처가 아기를 가져야만 금화를 데려올 수 있다는 중전과 대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서용은 금화의 부모님을 한양으로 모시고 가려고 했지만 금화가 묻힌 곳을 떠날 수 없다면서 아기만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이듬해 봄에 서용이 아들을 안고 금화의 부모님을 찾아왔습니다.
금화의 무덤에 절을 하고 술을 붓던 서용은 무덤가에서 지금까지 못 보던 꽃을 발견했습니다.
꼭 자기가 금화에게 준 염낭처럼 생긴 꽃이었습니다.
서용은 금화처럼 아름다운 꽃을 쓰다듬으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서용은 그 꽃을 한 무더기 파서 한양 대궐로 가져갔습니다.
그후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그 꽃을 금낭화라고 불렀다고 합니다.